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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공 차고 셀카 찍고…‘민머리 회장님’을 보다

확 달라진 총수들, ‘파격’은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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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2019.05.14 10:32:54

민머리 헤어스타일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박서원 두산매거진 대표가 최근 자신의 SNS에 공개한 조수애 전 JTBC 아나운서와의 웨딩사진. 박 대표는 두산가(家) 4세로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 사촌지간이다. (사진=박서원 인스타그램)

“오늘 보셔서 아시겠지만 요즘은 민머리가 대세다. 지난번에 서원이를 데리고 어디 가다가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데 너는 왜 머리를 밀고 그러냐’고 했더니 서원이가 ‘머리카락은 안 물려 주셨습니다’라고 하더라”

박서원 두산매거진 대표(40)와 조수애 전 JTBC 아나운서(27)의 결혼식에서 박 대표의 아버지인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건넨 말이다. 좌중은 와 하고 웃음바다가 됐고 신랑신부도 웃음을 터트렸다.

재벌가 최고경영자의 헤어스타일이 ‘민머리’인 것도 놀랍지만 아버지의 유머도 수준급이다. 박용만 회장과 박서원 대표는 두산가(家) 3세, 4세다. 박 회장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삼촌이자 재계를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의 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박 대표는 박정원 회장과 사촌지간이다. (CNB=도기천 기자)

직원들과 밥먹고 셀카에 축구까지
‘소통→아이디어→경영전략’ 3박자
“경영세습 본질은 그대로” 지적도


대기업 회장들이 달라지고 있다. ‘총수’(오너 일가가 대주주이자 경영자인 기업의 우두머리)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소통’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단순히 고객과 직원으로부터 민원을 듣는 수준이 아니라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통해 경영전략을 세운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최 회장은 지난 1월 신년회에서 “올해 안에 임직원들과 100차례 만나겠다”고 공언한 뒤 활발한 소통 행보에 나서고 있다.

SK그룹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총38회의 ‘행복토크’가 이뤄졌다. 최 회장은 10여명의 소규모 만남부터 100여명 이상의 행사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임직원을 만나 사전 각본 없이 격의 없고 솔직한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

지난 1월 8일 SK서린사옥에서 열린 행복토크 때는 “저처럼 일하라고 하면 제가 꼰대” “(줄무늬 양말을 보이며) 행복 창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라” 등 진솔한 워딩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에는 SK에너지 울산 신설 공장, SK이노베이션 충남 서산 배터리 공장 등을 방문해 임직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어떤 자리든 주제는 ‘행복’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회사, 행복한 사람이 될지가 그의 담론이다.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달 19일 SK이노베이션 충남 서산 배터리 공장 등을 방문해 임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달까지 총38회의 ‘행복토크’를 가졌다. (사진=SK 제공)

여기에는 그가 평소 추구해온 ‘사회적 가치’가 배경이 되고 있다. 그는 빈부격차와 실업 등 우리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공유 경제’이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최 회장의 행복토크에는 ‘일을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할 때 세상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SK는 전사적으로 이를 실행하고 있는데, SK에너지가 GS칼텍스 등과 합작한 주유소 인프라 기반 택배서비스 ‘홈픽’, SK하이닉스의 공유인프라 포털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최 회장의 제안으로 국내최초로 사회적 가치를 주제로 한 민간축제 ‘소셜밸류 커넥트(Social Value Connect, SOVAC)’가 오는 28일 열릴 예정이다.

행사는 전문가 강연과 토론, 소셜벤처 등 사회적기업 창업·투자 상담, 사회적기업 상품 전시·판매 등으로 진행된다. SK를 비롯해 100여곳 이상의 사회적기업과 투자 기관, 공기업, 학계 등이 파트너로 참여한다.

이 행사는 지난해 말 최 회장이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으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제안한데서 비롯됐다. SOVAC 사무국은 참가 신청자가 2천여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유력 경제지 ‘포브스’는 아시아판 3월호 커버스토리로 최 회장의 이런 이야기를 다뤘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왼쪽)이 지난 11일 ‘효성 한마음체육대회’ 축구 결승전에 직접 선수로 출전해 임직원들과 함께 경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효성 제공)
 

자식 아닌 경영진에 그룹 맡기기도

2017년 총수 자리에 오른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도 갈수록 소통 보폭을 넓히고 있다.

조 회장은 지난 11일 안양공장 잔디구장에서 열린 효성그룹의 ‘한마음 체육대회’에 참가해 직접 축구 선수로 뛰며 직원들과 스킨십에 나섰다. 효성티앤씨와 효성중공업 간 축구 결승전에서 효성중공업 소속 선수로 뛴 것.

그동안 재계에서 총수가 직원들과 호프미팅을 갖거나 점심식사를 함께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직접 선수 자격으로 공을 차는 경우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 조 회장은 이날 “스포츠에서는 아무리 개인 역량이 뛰어나도 좋은 팀워크를 이길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효성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라고 강조했다.

조 회장의 이런 파격 행보는 이미 지난해부터 계속돼 왔다.

작년 3월에는 이사회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해 그룹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며 지주사인 ㈜효성의 이사회 의장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뒤에는 각각 분할된 효성티앤씨·효성중공업·효성첨단소재·효성화학의 ‘공동 기업설명회’ 자리에 직접 참석해 ‘컨설턴트’ 역할을 자처했다. 조 회장이 직접 금융사, 관계사 등을 상대로 사업을 알리고 투자 유치 설득에 나서고 있다.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고 물러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재계 31위 코오롱그룹의 이웅열 회장은 작년 11월 전격적으로 자진 사퇴를 선언해 재계를 놀라게 했다. 이 회장은 “1996년 1월, 40세에 회장직을 맡았을 때 20년만 코오롱의 운전대를 잡겠다고 다짐했었다”며 각 계열사 전문경영인들에게 그룹 경영의 ‘바통’을 넘기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실험을 단행했다. 이 회장은 1956년생으로 퇴임 당시 62세에 불과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30일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을 안내하며 대화를 나누다 문 대통령과 함께 웃고 있다. 오른쪽부터 정은승 삼성전자 사장, 이 부회장, 문 대통령,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젊은 재벌들, ‘열린 회사’ 표방

재계서열 10위권 내 총수들의 행보도 예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과거 베일에 가려진 삼성가(家)의 모습을 벗고 안팎으로 강한 이미지를 표방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해 “삼성의 원대한 목표 설정에 박수를 보내며 정부도 적극 돕겠다”고 하자, “메모리에 이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확실한 1등을 하겠다”고 화답했다. 앞서 연초에 열린 청와대 주관의 ‘기업인과의 대화’ 때는 문 대통령에게 “어려울 때 진짜 실력이 나온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연구개발(R&D)에 73조원, 생산시설 확충에 60조원 등 총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반도체 1위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운 상태다.

이 부회장은 현장 소통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수원사업장 생산라인 방문 때는 임직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이 와중에 직원들의 ‘셀카’ 요청에 흔쾌히 포즈를 취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총수에 오른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재계 최연소(78년생) 회장다운 빠르고 과감한 결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LG유플러스의 CJ헬로비전 인수, 스마트폰 생산기지 해외 이전 결정, 비주력사업 정리 등 불과 10개월 동안 큰 변화를 일으켰다. 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콘퍼런스에도 직접 참석하는 등 글로벌 보폭도 넓히고 있다.

지난해 9월 그룹 사령탑으로 부상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은 과거 현대차에 만연했던 ‘순혈주의’를 깨고 외국인 인재를 적극 영입하는 등 파격적인 인사로 눈길을 끈다.

현대차는 자동차 산업의 핵심인 연구개발(R&D)·디자인·판매 세 부문의 사장을 모두 외국인에게 맡겼다. 글로벌 R&D는 BMW 출신 알버트 비어만 사장이, 디자인 분야는 폭스바겐 출신 피터 슈라이어 사장이,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닛산 최고성과책임자(CPO) 출신인 호세 무뇨스 사장이 각각 이끌고 있다.

 

재벌개혁 등 사회적 변화에 맞춰 대기업 총수들이 예전과 달리 소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작년 9월 평양정상회담 때 최태원 SK 회장이 대동강변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제왕적 총수 시대’ 막 내렸나?

재계의 이런 변화는 최근 일부 대기업 총수들이 불명예스런 일로 잇달아 퇴진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실례로 재계 14위 한진그룹의 고(故) 조양호 회장은 최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재선임안이 부결되면서 대표이사로서 경영권을 박탈당한 뒤 미국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폐질환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긴 하나, 최근 몇 년간 계속된 한진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이 병세를 악화시켰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재계 25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은 최근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3월 전격적으로 물러났다.

‘마지막 1세대 총수’로 불리던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지난 2017년 9월 비서 성추행 혐의로 피소되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재계에서는 총수 일가가 대를 이어 평생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면서 그룹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은 사실상 지나갔다고 보고 있다. 촛불혁명에서 시작된 재벌개혁의 열풍이 달라진 기업풍토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제왕적 재벌총수’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사회평론가 구병두 건국대 교수는 CNB에 “재계의 최근 변화는 기업경영의 중심축이 ‘사람’이 아닌 ‘제도’ 중심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을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으로 바꾸고 있는 추세와 맞물려 재벌의 변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개별 그룹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한국 재벌 문화의 틀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여전히 강하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국민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춰 총수들의 체질이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한국 재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경영세습이 사라진 건 아니다”며 “전문경영인 체제가 강화되더라도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는 한 대주주(오너) 일가의 기업 지배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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