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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르포] 새정부 출범 첫주말…목포는 세월호 노란물결 바다

세월호 현장에서 유달산까지…목포는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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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2017.05.16 11:48:53

▲목포 거리 곳곳이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플래카드와 리본으로 노란색 물결을 이루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세월호가 3년 만에 수면 위로 떠올라 목포신항에 도착한 지난 3월 31일 이후, 목포는 거대한 ‘기다림의 도시’로 변했다. 거리 곳곳은 미수습자 9인을 기다리는 노란색 물결로 덮였고, 새정부 출범과 함께 진상규명에 대한 기대감도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CNB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주말인 지난 13~14일  목포를 찾아 주민들과 방문객, 유족의 목소리를 들었다. 3년전 멈춘 세월호의 시간이 진실을 향해 다시 가고 있었다. (CNB=도기천 기자)

목포 거리는 노란색 물결
文정부에 거는 기대감 커
통한의 세월 이제 끝나길 

서울에서 쉬지 않고 다섯시간을 달려 목포톨게이트를 지나자 거리가 노란색 물결로 바뀌었다. 여기서부터 목포신항만으로 가는 약 15킬로 도로변의 가로수와 전봇대, 가로등에는 몇 개 건너 한 개씩 플래카드와 노란 리본이 휘날렸다. 

아파트대표자회, 통반장, 교회, 동창회, 친목모임 등 단체는 물론 개인, 가족, 동네가게들이 내건 것들이다. 노란색 바탕의 천에는 ‘잊지 않겠다’ ‘꼭 진실을 밝혀지길’ ‘아픔을 함께’ ‘미수습자 모두 가족 품으로’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바닷바람을 타고 펄럭이는 리본들은 “제발 어서 돌아오라”고 외치는 듯 했다. 

노란 리본은 전쟁에 나간 남편을 둔 아내나 가족들이 나무에 노란 끈을 묶은 데서 유래됐다. 1973년 토니 올랜도와 돈이 발표한 팝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늙은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 주오) 이후 멀리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상징이 됐다. 

목포에서 평생을 살아온 지춘자(75)씨는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진다’며 말을 꺼냈다.   

“뭣 땀씨 그렇게도 감췄나. 이제라도 불쌍한 애기들 한을 풀어야재.”

한 30대 부부는 “대부분 현수막(리본)은 세월호가 목포에 도착하면서 내걸렸다”며 “이곳 사람들은 목포대교를 ‘세월호 다리’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목포대교는 북항과 세월호가 있는 신항을 연결하는 총연장 4.13km의 해상교량이다. 다리 위에서 올라서면 항구에 누워있는 배가 저 멀리 보인다.  

▲목포신항만에 누워 있는 세월호. 항만부두 내에서의 접근이 통제돼 개펄(뻘밭)을 가로질러 접근해 근접 촬영했다. (사진=도기천 기자)


슬픔·분노·기다림의 1123일

토요일(13일) 오후의 항만은 무더웠다. 자원봉사자들 말로는 새정부 출범 전인 지난 주말보다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어린 자녀와 함께 온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았다. 고사리손으로 리본을 묶는 초등학생들이 눈에 띈다. 리본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형 누나 꼭 돌아와”라고 적혀있다.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은화.

철책 너머에 누워있는 세월호를 바라보는 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거웠다. 셀카를 찍는 이도 드물다. 사람들은 기념이 아닌 기록으로 그날을 보고 있었다. 

이날 단원고 조은화 양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견됐다. 은화 양의 것으로 짐작되는 옷가지 안에서 비교적 온전한 모습의 유골이 발견된 것.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지 1123일 만이다.   

은화는 다정하고 속 깊은 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한테 뽀뽀부터 했고, 문자나 카톡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냈다. 등교할 때면 ‘버스에 탔다’고, ‘어디를 지났다’고, ‘학교에 도착했다’고 엄마에게 문자를 했다. 귀가해서는 엄마를 앉혀놓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조목조목 말해주는 살가운 딸이었다. 수학을 유독 좋아해 회계사가 꿈이었다. 어머니 이금희(47)씨는 그런 딸을 1123일 동안 기다렸다.

은화 뿐 아니라 지난 10일 이후 계속 유골이 발견되면서 미수습자 가족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수색현장으로 뛰어가고 주저앉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수습한 유해가 자신의 가족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9명 모두 찾지 못하면 어떡하나’라는 우려가 앞서 마음껏 울지도 못한다. 

▲4.16유가족협의회 정성욱 인양TF 부위원장이 세월호 현장을 찾은 전남 순천 지역 청소년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미수습자 뿐 아니라 장례를 치른 유족들의 마음도 매한가지다. 이곳에서 만난 4.16유가족협의회 정성욱 인양TF 부위원장은 “사람들은 그만할 때도 됐다고 말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데 어떻게 그만 두냐”고 반문했다. 그는 “지금까지 감옥에 간 공무원은 123정 정장(해경) 1명 밖에 없다. 지시한 사람은 처벌받지 않고 현장에 출동한 사람만 처벌 받는다면, 앞으로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누가 구조하러 가겠나”고 말했다. 

이런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날 전남 순천 지역 청소년들이 단체로 찾아왔다. 

한 학생이 유가족들 앞에서 준비해온 편지를 읽었다. “아름다운 봄이지만 우리가슴에는 여전히 봄이 멀다. 그들이 밟아보고 싶었던 이 땅에서 같이하지 못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에 유가족 대표는 “미안해하지 마라 어른들이 죄다. 너희들에게 많이 놀아라, 하고 싶은 것 다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아이들은 너무 착해서, 너무 말을 잘듣다 그리된 거다”며 흐느꼈다.  

순천공고 1학년 정종운 군은 “친구들과의 약속을 취소하고 왔다. 노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여기는 지금 안오면 다시는 못 올 것 같아서 왔다”고 말했다. 

▲목포신항만에 누워 있는 세월호. (사진=도기천 기자)


“아이들 잃은 이유 아직도 몰라”

유족들은 여전히 3년 전 그날의 기억에 멈춰있다. 그토록 허술한 배가 어떻게 출항이 가능했는지, 왜 갑자기 배가 기울었는지, 해경이 왜 구조에 나서지 않았는지, 배에 무엇이 실렸는지, 정부가 왜 진실을 축소·은폐 했는지, 대통령이 그날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아이들을 잃게 된 이유를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런 사이 길바닥이 집 보다 더 편한 공간이 됐다. 지금도 상당수 유족들은 이곳 컨테이너와 광화문 천막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한 유가족은 “집에 있으면 나가 있는 사람들(피해자가족)이, 거리에 있으면 집에 남은 가족이 걱정돼 어디든 마음을 못 두고 있다”고 했다.   

▲목포신항만을 방문한 어린이들이 리본에 추모글을 적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하지만 이들에게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제2의 특조위’ 가동을 약속하면서 진실을 밝히려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문 대통령이 ‘문변’이라는 아이디로 미수습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모두가 함께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수습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하루빨리 돌아오길 기원합니다”라는 댓글을 관련기사에 직접 달기도 했다. 국회에는 특조위 활동 기간과 조사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세월호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유족들은 문 대통령을 믿는다면서도 과거 해수부가 특조위 조사를 방해해온 만큼 다시 구성될 제2특조위는 반드시 민간 중심으로 꾸려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부위원장은 “대통령의 7시간과 침몰원인이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수습자 발굴 작업에 대해서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뻘을 제거하고 있는 만큼 날씨가 더 더워지기 전에 최대한 많은 인원을 투입해 주길 바란다”고 바램을 전했다. 

2014년 4월 16일에 멈춘 세월호의 시계는 이렇게 조금씩, 천천히 다시 가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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